〈스포츠칸〉'바둑 얼짱' 이슬아, 판정패 당한 적 없다

2010. 11. 2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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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혼성페어 예선전에서 발생한 '의문의 판정패'는 실제로 판정패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연히 홈팀 중국의 텃세도 아니었고, 박정환-이슬아 조가 불이익을 받은 것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바둑은 일반적인 운동경기와는 조금 다른 룰을 두고 있다. '타임아웃제'와 '심판의 재량권 발동'도 그런 룰 가운데 하나다. 이는 경기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규정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은 하루에 많게는 3판의 대국을 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통상적인 세계대회처럼 제한시간을 주면 24시간을 둬도 3판을 마무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마련한 것이 '타임아웃제'다. 각자 또는 각팀에 45분의 시간을 주고 이를 다 소비하면 시간패를 선언하는 게 '타임아웃제'의 골격이다.

그러나 이 룰에는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바둑은 A가 많이 불리한 대신 시간은 많고, B는 많이 유리한 대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을 때 A가 일명 '시간 공격'을 펼칠 수 있다. 도저히 수가 나지 않는데도 상대의 집에 들어가거나 불필요한 패싸움 등으로 시간을 질질 끌어 상대를 '시간패'로 몰아가는 것.

이런 '치사한' 수법을 막기 위해 '타임아웃제'의 보조룰로 둔 것이 '심판장의 재량권 발동'이다. 앞에서 예로 든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당하는 쪽에서 심판장에게 일종의 '도움'을 청하면 심판위원들이 그때까지의 형세를 판단해 승부를 가려주는 것. 이는 도움 요청이 없더라도 심판장이 그런 상황을 봤을 때 적용할 수 있다.

이번 박정환-이슬아 조의 '사건'도 이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당시 박정환-이슬아 조는 5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상대팀인 중국의 류싱-탕이 조는 1분이 남아 있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류싱-탕이 조가 1분을 더 소비할 경우 한국이 시간승을 거두는 상황. 이때 심판장이 재량권을 발동, 중국 측의 승리를 선언했다는 것이 이번 '홈 텃세' 또는 '의문의 판정패'의 골자다.

하지만 그 순간에 심판장은 중국 측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았다. 당시 심판장은 박정환-이슬아 조에게 다가와 "승부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비신사적인 시간공격을 하지 말고 정상적인 끝내기를 하는 게 좋겠다" "아니면 이 상황에서 판정을 받겠냐" 따위 말을 전했다.

하지만 중국 말을 모르는 박정환-이슬아 조는 어리둥절해하며 아무 말도 못했고, 심판장은 이 문제를 여러 심판과 상의하기 위해 자리를 피했다. 이때 바둑이 워낙 불리해서인지, 아니면 짜증이 나서인지 모르지만, 박정환 8단 스스로가 불계패를 인정하는 팻말을 들어올렸다. 결국 박정환-이슬아 조는 판정패를 당한 것이 아니라 불계패를 당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대표팀의 양재호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21일 한국 기자들을 만나 직접 설명한 내용이다.

이 자리에서 양 감독은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은 다소 격앙된 것이고, 사실도 아니다"며 "기사 내용에 대해 중국 측에서 조목조목 반박하려는 것을 중국기원 장원둥 주임이 막았다"고 설명했다. 양 감독은 이어 "한국과 중국 모두 바둑계를 위해 대회를 공정하게 진행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바둑 얼짱' 이슬아를 둘러싼 '의문의 판정패'나 '중국 홈 텃세'는 소통의 부재에서 온 오해이자, 한국 언론의 과민반응이 빚은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기자들조차 경기장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규정집을 중국어와 영어로만 만들고, 각국에 규정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중국 측의 경기 운영방식은 여전히 문젯거리다.

한편 문제의 대국에 대해 한국대표팀 코칭스태프는 물론 프로기사 대부분도 '박정환-이슬아 절대 불리'를 인정했다.

< 사건 요약 >

△심판장이 가장 늦게까지 진행되고 있던 박정환-이슬아와 류싱-탕이의 2라운드 경기를 관전하다 중지시키고 대국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이 상태로 계속할 것인지를 물음. 이때 5분가량을 남겨 놓은 박정환 팀은 1분가량이 남아 있는 상대에게 시간공격을 하고 있었다(대국이 불미스럽게 흘러가는 등이 상황이 벌어지면 심판장이 재량으로 판정을 내릴 수 있음).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박정환-이슬아가 어리둥절해하자 심판장은 심판위원들과 상의에 들어갔고, 그 사이 벙벙한 상황에 놓인 박정환 팀은 불계패를 인정하는 푯말을 들었다(이에 대해 코칭스태프는 '그런 상황이 싫었을 것이고, 짜증도 났을 것이고, 바둑이 불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상황을 가까이에서 접한 바둑계의 한 관계자가 정확한 전후 사정을 모른 채 취재진에게 '판정패'라는 말로 전했고, 기자들은 그것을 토대로 '의문의 판정패' 등으로 보도한 것이다. 기자실과 대국장은 도보로 3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기자들 모두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광저우|엄민용기자 >-ⓒ 스포츠칸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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